언제였을까? 가족 모두가 함께 여행을 한지가?? 2004년 건 1년 동안의 온가족 세계일주 이후, 가족 모두가 함께 해외를 가본 기억은 없는 듯 하다.아이들도 성장하여 가정도 꾸리고, 직장생활에 바쁘고!! 늘 같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같이 여행을 가본 기억은 거의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문제이다. 마눌과 딸렘 중 한명은 꼭 자리를 지켜야 하니, 같이 할 기회가 없었다. 마눌이 자리를 비우면, 딸렘이 꼭 있어야 한다. 마눌과 나, 그리고 아들은 가끔 같이 할 수 있었고 ~~~ 딸렘과 마눌이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딸렘은 늘 함께 하지 못했다. 딸렘은 결혼 후 늘 구영하고만 ㅋㅋㅋ
2025년 추석, 4박 5일의 연휴!! 이번엔 정말 다함께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것도 대체공휴일 하루 오전만, 채약사와 예현이 수고해주기로 해서 이번엔 수년만에 다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함께 가게 된 2025년 추석여행!! 이번엔 중국 본토 시안(西安)이다.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지금, 여러 문제가 있다. ㅋㅋ 인천공항을 포함 전국의 모든 공항 근로자들이 파업을 선언했단다. ㅠㅠ 별 문제 없이 여행이 진행은 되겠지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미리 공항에 가야 할 것 같다. 또 중국도 연휴!!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하는 시기이다. 여러 정보에 의하면, 이런 시기 중국을 가면,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온다고 한다. ㅋㅋㅋ 사람에 밀려 다니는 상황?? 내가 가장 견디지 못하는 상황인데 ~~~ 그럼에도 시간이 이때만 허락되니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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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안 - 웨이허 강[渭河]의 황투[黃土] 고원에 있다. 예로부터 여러 왕조의 수도였고 매매와 교역의 중심지이며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BC 11세기부터 이 지역에 도시가 형성되었다. 전한(前漢)의 수도였던 장안성(長安城)은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로 BC 202년 지금의 시안 바로 북서쪽에 세워졌다. 왕망(王莽)의 난(9~23)에 뒤이은 혼란의 와중에 장안 성이 크게 파괴되었으므로 23년에 세워진 후한(後漢)은 뤄양[洛陽]을 수도로 정했다. 서북 변방의 이민족들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전략적 요충지이며, 6세기에 서위(西魏)와 북주(北周)가 단기간이나마 수도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안은 수세기에 걸쳐 쇠퇴했다. 그러다가 수(隋 : 581~618)가 장안을 수도로 정하자 이곳은 다시 번성했다. 수에 이어 당(唐 : 618~907)의 수도가 된 장안은 크게 팽창하여 세 구역으로 나뉘었다. 즉 궁성(宮城), 관리들이 거처하면서 집무했던 황성(皇城), 장인(匠人)과 상인들의 활동무대였던 외곽성이 바로 그것으로, 장안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당이 몰락한 후 장안은 상업 중심지이며 중앙 아시아와의 무역중개지로서 그 기능을 계속 유지했으나 점차 쇠락했다. 13세기에 중국에 왔던 마르코 폴로는 이 도시를 번창하는 교역 중심지라고 묘사했다. 현재 널리 통용되는 이름인 시안은 명대(明代 : 1368~1644) 이후에 정해졌다. 얼마 후 서경(西京)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1943년에 다시 시안으로 복귀되었다. 1920년대부터 이 도시는 소련으로부터 공산주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주요창구 역할을 했다. 또한 1936년 12월의 시안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이 사건으로 항일국공합작(抗日國共合作)이 시작되어, 동남 아시아에서 영국·프랑스·네덜란드의 제국주의가 최후를 맞게 됨을 예고해주었다. 근대산업으로 제철소·방직공장·전기기계공장 및 비료와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화학공장이 있다. 중국 주요농업지대의 중심지로 목화·밀·차 등 농산물 가공업이 발달했다. 시안과 동해안의 쑤저우[蘇州]를 잇는 룽하이[隴海] 철도가 놓여 있으며 그밖에 몇 개의 철로가 서쪽을 향해 뻗어 있다. 시안에 있는 산시 성립박물관은 예전에는 공자(孔子) 사당이었다. 이곳은 글씨가 새겨진 비석과 불상 등 중요한 유물들을 모아둔 베이린[碑林]으로 유명하다. 당대에 세워진 샤오옌 탑[小雁塔], 다옌 탑[大雁塔 : 높이 45m], 다츠언 사[大慈恩寺], 명대에 건립된 종루(鐘樓)와 고루(鼓樓), 원래는 742년에 세워졌으나 현재의 건물은 14세기에 지어진 거대한 이슬람교 사원, 보존상태가 양호한 14세기의 성문 3개 등 흥미 있는 유적들이 많다. 자오퉁대학교[交通大學校]와 중국에서 가장 큰 과학기술 전문교육기관인 시베이공과대학[西北工科大學], 그밖에 많은 대학과 연구소들이 있다. 시안 북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 진시황릉(秦始皇陵)이 있다. 이 능은 1974년에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전투대형으로 정렬되어 있는, 진흙으로 빚은 실물 크기의 전사(戰士) 토우(土偶)가 8,000여 점이나 발견되었다. - 츨전 : 다음 백과 - |
아 ~~~ 이런 역사적인 도시를 여행하자면, 준비-공부를 해야 한다. 이제 나이가 들어 이런 일들이 어렵기도 하고 머리도 아프다! 아이들이 해주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이런 스타일은 아닌 듯 하다. 머 ~~~ 내가 해보고,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해보자!! 사실 시안를 여행지로 삼은 이유는 [진시황 병마용]를 보기 위해서가 첫번 째 이유이다.
| - 진시황 - 전국 7웅 중 하나인 진나라가 다른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했다. 진왕 정은 자신을 첫 번째 황제라는 뜻에서 ‘시황제’라고 부르게 했다. 시황제(진시황)는 주나라의 봉건제(중국 주나라 건국 참조)를 폐지한 대신 전국에 군현을 두고 직접 다스리는 중앙 집권적 군현제를 실시했다. 전국을 관통하는 직도(直道)를 닦고 문자 ・ 도량형 ・ 화폐를 통일하는 강력한 통일 정책도 펼쳐 나갔으며, 북방 흉노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진나라는 상앙, 이사 등의 법가 사상을 받아들여 강력하고 공정한 법에 따라 통치했으나, 가혹한 형벌에 반발해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통일 16년 만에 멸망했다. 중국 북서부에 위치한, 전국시대 진나라의 군주인 장양왕(莊襄王)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장양왕은 조(趙)나라에 볼모로 붙들려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부유한 상인 여불위(呂不韋)의 애첩이었다. 여불위는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원래 후계자로 지명되지 않았던 장양왕을 재위에 올려놓았다. 정은 13세이던 BC 246년 재위에 올랐다. 이때 진은 가장 강력한 나라였고, 중국의 나머지 나라를 지배하에 두려고 했다. 중원의 국가들은 진을 야만국으로 여겨 멸시했지만 산지로 이루어진 서부 변방에서의 강력한 위치 때문에 진은 법가, 즉 전체주의적인 국가 철학을 바탕으로 강력한 관료체제를 갖춘 정부와 군사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BC 238년에 공식적으로 친정(親政)을 선언하기 전까지 사실상 여불위가 정권을 담당했다. 왕으로서 그가 취한 첫번째 행동은 자기 어머니와 정을 통한 반대파의 신하를 살해하고 여불위를 제거한 것이었다. 뒤에 승상(丞相)이 된 이사(李斯)의 주장을 받아들여, 유능한 조언자들을 왕 주변에서 떼어냈을 수도 있는 이방인 추방 법령을 폐지했다. 진나라는 첩자, 많은 뇌물, 재능 있는 장군들의 가혹하고 효과적인 지도력 덕택으로 나머지 여섯 경쟁국을 차례로 점령하여 마침내 BC 221년에 제(齊)나라를 멸하고 최후의 승리를 얻었다. 이로써 중국은 최초로 통일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 츨전 : 다음 백과 - |
| 병마용갱(兵馬俑坑)은 중국 산시성 시안시 린퉁구에 있는 진시황릉에서 1km가량 떨어진 유적지로 흙을 구워 만든 수 많은 병사, 말 등 모형이 있는 갱도이다. 1974년 농민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해 지금까지 4개 갱도를 발견했다. 병용은 키가 184cm에서 197cm로 큰 편이며, 장군을 병사보다 크게 만들었다. 병마용은 전사, 전차, 말, 장교, 곡예사, 역사, 악사 등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표현하고 있다. 발굴한 4개 갱도 중 3곳에 모두 8천여 점의 병사와 130개의 전차, 520점의 말이 있다고 추정하며, 아직도 발굴하지 않은 상당수가 흙 속에 묻혀 있다.[1] 개요 장교 병마용갱은 진시황 장례에 사용한 테라코타(terracotta)다. 병마용갱은 1974년 한 농부가 발견해서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진시황릉에 관한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시황이 340만 명 인부를 동원하여 기원전 246년에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진시황릉을 완공한 후 약 1 세기가 지난 때 저술한 사서다.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릉은 지상의 황궁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은 규모이며, 수은이 흐르는 5,000여 개 강과 수십 개 망루를 가진 도성 안에 온갖 보물과 병사로 화려하게 조성하였다고 전한다. 진시황릉은 지상 궁전을 재현한다는 개념으로 지었으며, 완공한 후 도굴을 막고자 동원했던 인부들을 모두 사살하였다고 한다.[2] 2003년 1월 9일 진시황릉의 부장릉이 발견되어 진시황릉이 병마용 뿐만 아니라 실제 황궁을 재현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3] 최근 조사 결과 병마용갱 부근의 리산의 토양이 많은 수은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이곳이 바로 진시황릉이 조성된 곳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자면, 진시황릉은 높이 76미터 넓이 350 평방미터에 이르는 흙으로 조성된 거대한 피라미드인 것이다. 리산에 대한 발굴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4] 2007년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원격 탐지 장치를 이용하여 내부에 벽이 있음을 확인하였다.[5] 병마용 말과 병사 병마용의 병사들은 장인들에 의해 머리, 몸통, 팔, 그리고 다리가 각각 제작된 후 결합되었다. 연구 결과 제각기 다른 얼굴을 위해 8 종류의 틀이 사용되었다고 한다.[6] 다른 부위도 각기 여러 종류가 있어 이들을 조합하여 다양한 형태의 병마용을 제작한 것이다. 다리 부분은 대부분 동일한 형태로 같은 틀을 사용하여 대량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조립을 위해서는 각각의 부분을 맞춘 뒤 다음 과정으로 넘겨주는 생산 공정에 따른 조립 라인이 있었을 것이다. 최근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 기와의 생산과 같은 일상 생활 용품의 제작에서도 이러한 생산 라인이 존재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병마용은 살아있는 듯한 모습의 등신대로 제작되었으며 얼굴 부위에는 채색의 흔적이 있다. 병마용의 존재는 진시황제의 강력했던 권력을 상징한다. 병사들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모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은 하되 특징을 살리는 진의 문화가 두드러진다. 갱도 병마용갱은 1974년 1호 갱이 발굴된 이후 현재까지 발굴이 진행 중이다. 1호 갱: 1974년에 발굴되었다. 총 14260제곱미터이며, 진용 약 6000구에 전차 40대가 발굴되었다. 2호 갱: 기병과 근위대의 용병이 있다. 3호 갱: 1976년에 발굴되었으며, 완전 발굴된 520제곱미터의 3호갱은 지휘부로 추정되는데, 장군의 것으로 보이는 채색된 전차 1량과 갑옷 입은 보병용 64건, 마용 4건이, 진용 78건, 전차 1대가 출토되었다. 4호 갱: 다른 갱도와 달리 병마용이 없이 비어있는 갱도였다 - 다음 백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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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이 함께 하니 약간의 역할 분담을 하기로 했다. 호텔 예약은 마눌과 딸, 나는 일정표, 아들과 구영은 맛집 검색!! ㅋㅋ 여러 명이 함께 하니, 마눌과 둘만의 여행때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재미도 있을 듯 하다. 그래도 지극히 J 유형인 나!! 전반적인 자료를 조사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끼어들 부분은 남겨야지!! ㅋㅋㅋㅋ
| 5일(일) | 6일(월) | 7일(화) | 8일(수) | 9일(목) |
05:00 - 안성 출발 07:00 - 공항 도착 | 09:00 - 화청지 / 여산 | 09:00 - 성내 돌아보기 시안 박물관 | 10:00 - 수영장 / 사우나 | 09:00 - 호텔 체크아 |
10:00 - ICN 출발 12:10 - XIY 도착 | 12:00 - 점심 | 12:00 - 점심 | 12;00 - 점심 | 12:40 - XIY 출발 |
15:00 - 호텔 체크인 ( Jw Merriot Xian) | 13:00 - 병마용 / 시황 묘 | 대안탑 / 비림박물관 / 흥선사 / 소안탑 / 와룡사 | 16:40 - ICN 도착 | |
16:00 - 성내 구경 18:00 - 저녁 식사 / 야경 | 18:00 - 시내 저녁 식사 | 18:00 - 저녁 식사 20:00 - 대당불야성 | 18:00 - 성벽구경 / 성벽 야경 | 20:00 - 귀가 |

우선은 병마용 + 화청지 + 셔틀버스 콤비 티켓을 구입했다. 트립닷컴!! 1인당 약 47000원이다. 이 정도면 합리적인 가격인데, 65세 이상이면 무료입장이라는데 ~~~ 중국인만 해당되나?? 아님 외국인도 가능한가?? 모를 일이다. 정확한 정보도 없고, 병마용 공식홈피는 중국어만 지원되고 있다. 방법이 없는 듯!!!
5일(일)
1.인천터미널1 출발 / 터미널2 도착 – 차량주차 위치 ; 갈때는 아시아나, 올때는 대한항공!!
2.일요일 점-저 식사 – 식당 선정 / 성내에서
3.성벽 총 14Km 이동 방법 – 출입구 정보 / 이동수단(자전거) 대여 방 법 – 위치!! / 자전거 1인승/45, 2인승/90 위안
– 야경!! 종루, 고루!!
4.회족거리 - 중국식 모스크
6일(월)
5. 병마용갱 투어방법, / 화청지, 온천 - / 장안가무쇼 관람여부 / 투어, 티켓,
6. 점심, 저녁 식사 / 식당 정보
7. 화청지 + 장안가무 콤보 티켓 – 미리 예매?? ; 현재 남아있는 티켓은 23:25분 티켓만 ㅠㅠ
8. 밤 늦은 시간 귀가!!
** 대부분의 병마용 가이드투어가 오전에 진행됨으로, 화청지를 먼저 들러 오후에 병마용이 합리적이라고!!
** 장안가 공연도 현재 남은 표는 밤 11시 반 공연만!! ㅠㅠ 포기하는게 좋을 듯!!
7일(화)
9. 대안탑과 성내 다시 돌아보기
8일(수)
11. 화산까지의 거리가 멀다. 이동수단??
12. 화산 대신의 스케줄!!
** 아마도 이번엔 화산을 포기하는 것이 좋을 듯!! 대신 호캉스!! 시내 즐기기!!
9일(목) 시안 - 인천
시안에 있는 산시 성립박물관은 예전에는 공자(孔子) 사당이었다. 이곳은 글씨가 새겨진 비석과 불상 등 중요한 유물들을 모아둔 베이린[碑林]으로 유명하다. 당대에 세워진 샤오옌 탑[小雁塔], 다옌 탑[大雁塔 : 높이 45m], 다츠언 사[大慈恩寺], 명대에 건립된 종루(鐘樓)와 고루(鼓樓), 원래는 742년에 세워졌으나 현재의 건물은 14세기에 지어진 거대한 이슬람교 사원, 보존상태가 양호한 14세기의 성문 3개 등 흥미 있는 유적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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