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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구포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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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어부 2026. 4. 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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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에 돌아온지 5년이 되어 가는데 ~~~
게을러서일까? 아님 매너리즘일까? 아님 머지??
걍 ~~ 구차니즘인가??
거의 돌아다니질 않습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돌아오면 ~~
강쥐와 산책 이외에는 거의 밖으로 출입이 없습니다.
매일의 생활이 이런 식입니다. ㅋㅋㅋ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일제강점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신축된 성당.

천주교성당. 안성 본당은 1901년(광무 5)아산 공세리 본당에서 분할, 창설되었다. 초대주임신부로 부임한 공베르(Gombert, A., 孔安國)는 전에 군수0를 지낸 백씨(白氏)의 집을 사서 임시성당으로 사용해오다가, 1922년에 로마네스크양식의 벽돌 성당건물을 신축하였다. 설계 및 감독은 푸아넬(Poisnel, V.)신부가 맡았으며, 여기에 쓰인 기와와 돌, 그리고 목재의 일부는 안성군 보개면 동안리에 있던 누각식 동안강당(東安講堂)을 헐어서 썼고, 대부분의 목재는 압록강에서 운반해왔다. 1925년에 덕원수사원(德源修士院) 목공부 출신의 원재덕(元載德)에 의하여 제대(祭臺) 뒷벽면에 조각장식이 이루어졌고, 종탑부는 1955년에 고딕양식의 벽돌조로 증축되었다.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9칸의 전형적인 바실리카식 라틴십자형이며, 종탑부의 하부는 개방되어서 출입구의 구실을 하고, 종탑부와 입구 한 칸이 2층으로 되어 있어 성가대석으로 쓰인다. 종탑부에는 세 개의 첨탑이 있는데, 가운데 첨탑은 사각형에서 끝이 팔각형으로 변형되었고, 총 높이 26m로 좌우첨탑은 네모뿔로 되어 있다. 내부 장식은 서양식인 반면, 구조와 외관은 전통적인 우리나라 목조건축양식을 채택하고 있어, 현재 몇 개 남지 않은 한옥성당 중의 하나이다.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2000년에 100주년 기념성당을 새로 건립하고, 본당명도 구포동에서 안성 본당으로 변경했다. 100주년 기념성당은 옛 성당 아래 쪽에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건립한 것으로 현재 성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성 구포동성당 [安城 九苞洞聖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여기도 건 30여년만에 들어와 본 듯 하다.
그때는 누군가의 결혼식이었나??
누구였을까?? ㅠㅠ
 
 



토요일 오후 성당 근처에서 심술, 꺼실과 점심을 먹고
바로 앞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문뜩!!
오랜만에 가보자!! ㅋㅋㅋ 

환기 중인가? 문은 열려 있는데 ~~
감히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
쪽문에서 구경만!! ㅋㅋ

 
 

안성구포동성당 (安城九苞洞聖堂)은 경기도기념물 제82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안성시 혜산로 33(구포동 80-1번지)이다.

이 성당은 광무 5년(1901)에 프랑스 신부 꽁베르(R.Antonio A.Combert, 한국이름 공안국)에 의해 창건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건물은 보개면 신안리에 있었던 동안강당(東安講堂)의 목재와 기와로 1922년 재건된 것이다. 1955년에는 전면 입구와 종탑이 로마네스크 풍(風)으로 개축되었다.

성당 평면은 긴 십자가형인데 날개채가 크게 돌출되어 있지 않아 전체적으로는 장방형에 가깝다. 입구는 서측에 위치하며 중앙에는 회중석(會衆席)이 있고 동쪽 끝에는 제단(祭壇)이 있어 서양식 성당의 공간 구조와 유사하다. 회중석은 높직한 공간 좌우에 고주(高柱)가 열지어 서 있는 네이브(Nave, 身廊)와 그 옆의 낮은 아일(Aisle, 側廊)로 구성되었으며 아일 상층의 회랑(廻廊)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측면에는 채광을 위한 고창(高窓)이 나 있다. 제단은 회중석과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내부 천장도 모두 평반자 형식이다. 구조는 목조 기둥과 보(樑)가 짜맞추어져 골조(骨組)를 이루고 그 사이에는 회벽으로 마감되었으며 창문 아랫부분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다. 지붕에는 둥근 서까래가 걸리고 한식 기와가 올려졌는데 처마는 비교적 짧다.
이 성당은 서양 카톨릭 성당의 형식을 따랐지만 재료와 결구(結構)에 있어서 전통적인 방식이 적용된 한 · 양 절충식 건물로서 성당 건축사 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이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공베르 신부님이 가져오신 포도나무인가??
그래서 보호하고 있나??
아님 상징적인 의미인가??
 
아주 독특한 작품들도 있다.
 


늘 지나다니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들어와 보았다! 우리 지역에
이렇게 아름다운 유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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