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우연한 기회에 오토캠핑에 푹 빠져든 회사원 최모(42)씨는 최근 가족들과 함께 강원도 자라섬 캠핑장에 갔다가 낭패를 겪었다. 그의 텐트 옆에 들어선 으리으리한
아방궁(?)이 심기를 건드렸다. 수입 사륜구동차량이 끌고 온 트레일러부터 시작해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고가의 텐트와 타프. 스토브 등이 차려지고 처음 보는 다양한 장비들이 그를 압도했다. 최씨는 아들과 함께 구경을 하다 문득 자신의 텐트가 초라하게 느껴졌고. 캠핑을 시작도 하기전에 기가 죽었다. 옆 텐트와는 먹는 것도 달랐다. 가스버너에 코펠 얹고 꽁치김치찌개를 끓이는 동안. 옆 텐트에서는 온도계가 달린 미국산 그릴 위에 립스테이크가 올라앉아 익어가고 있었다. 괜한 짜증이 났고 밤새 잠을 설친 최씨는 다음날 도망치듯 텐트를 접어 집으로 돌아왔다.
호화 오토캠핑족들의 사치에 서민 오토캠핑족들이 울고 있다. 자연을 찾아 온 가족이 기분좋게 캠핑을 떠났다가 최씨처럼 난처한 상황에 직면해 오히려 스트레스를 안고 돌아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름 휴가성수기는 호화 오토캠핑족이 그나마 적게 출몰하는 시기이고 본격적인 오토캠핑시즌인 가을이 다가오면 위화감이 극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
◇이것 저것 전부 구입하면 중형차 한대 값
오토캠핑이 자연과 벗삼아 쉬는 여행 트렌드로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년 사이다. 획일적인 여행패턴에서 벗어나 텐트의 얇은 천을 사이에 두고 대자연 속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오토캠핑인구가 대폭 늘었다. 한 유명 아웃도어업계 관계자는 "현재 60만명 선인 오토캠핑인구가 앞으로 3년 내 100만명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캠퍼들의 무분별한 사치가 모처럼 붐이 일고 있는 캠핑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른바 '캠핑 명품족'의 지나친 장비경쟁이 위화감을 조성하며 서민 캠핑족의 '
구축효과'를 낼 것으로 우려된다.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 오토캠핑에 입문했다는 윤진모(39)씨는 "솔직히 좋은 장비를 보면 사고 싶지만 너무 비싸다. 수입브랜드중 주방세트 테이블 하나가 150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 3만원이면 살 수 있는 삼각대가 20만원이나 하고. 1만5000원이면 충분할 더치 오븐이 37만원을 호가한다. 불쏘시개 장갑이 5만원. 침낭 하나에 62만원. 가솔린 랜턴이 45만원. 이 랜턴을 거는 작대기인 파일드라이버가 25만원이나 하는 그런 식이다. 고가의 오토캠핑 장비를 전부 구입할 경우 중형 자동차 값 한대는 나온다고 할 정도다. 나중에는 장비를 싣기 위해 차를 대형으로 바꾸는 웃지 못할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가를 선호하는 속물근성에 용품 업체만 신났다
고급장비 구입경쟁으로 신나는 것은 용품업체들이다. 아웃도어업계에 따르면 국내 캠핑용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2000억여원으로 전년도(1100억여원)에 비해 80% 이상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3000억원 선으로 느는 등 한해 1000억원씩 커지고 있다. 잘 알려진 K브랜드를 수입하는 캠핑용품업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같은 제품인데도 저가보다는 고가 제품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똑같은 용품을 브랜드만 다르게 해서 3종류로 출시했는데 일본에서는 저렴한 용품이 잘 팔린 반면 한국에서는 고가의 제품이 많이 팔렸다"면서 "고가의 명품을 선호하는 성향이 캠핑용품의 가격을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세태에 대해 '
오토캠핑 바이블'과 '대한민국 오토캠핑장 302'를 쓴 여행전문가 김산환씨는 "지나친 것이 문제다. 일부 캠퍼들의 과시욕이 주변 캠퍼들에게 위화감을 주고 있다. 또 고가의 장비를 선호하는 그릇된 문화가 자연속에서 휴식을 취하자는 캠핑 본연의 의미를 훼손시키고 있다. 이는 아직 우리의 레저문화 수준이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장비 욕심보다는 다른 캠퍼들의 프라이버시도 존중하고 자연을 벗삼아 휴식을 취하는 캠핑의 목적을 생각해봐야할 때"라고 꼬집었다.
유인근기자 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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