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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언 드림 2

자유로운 글쓰기

by 초보어부 2010. 2. 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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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미래의 세계를 이해함에 또 앞으로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태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그냥 편하게 읽으면 되지 .... 왜 이렇게 꼭 정리를 해야 할까??

일찍이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소유냐 삶이냐'에서 이것조차도 '소유욕'이라 지적했습니다.

정말 소유욕이 너무 강한 가 봅니다. 그냥 느끼면 되는데 ....

그럼에도 한번 정리해두면, 다시 되새김을 할 수 있겠지요!!!

 

 

2. 새로운 기회의 땅

 

1960년대까지는 사회, 경제적 신분상승이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이었다. 세습제도와 사회계급 체제의 오랜 역사로부터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지 못한 가난한 유럽인들에게 신대륙은 기회의 땅이었고, 자기 세대에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후손들에게는 더 나은 삶을 물려줄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분상승이 둔화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계급과 신분에 얽매어 있던 구세계는 지금 서서히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제 유럽인들은, 삶의 질과 더 나은 삶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유럽에서도 적어도 미국만큼은 된다고 느낀다. 유럽 선진국 18개국은 전부, 빈자와 부자 사이의 소득 격차가 미국보다 적다. 반면 고속득자(노동 인구 전체 임금의 90퍼센트 이상을 버는 사람들)와 저소득자(노동 인구 전체 임금의 10퍼센트 정도를 버는 사람들) 사이의 임금 불균형에 있어서는 현재 미국이 선진 18개국 가운데서 1위다.

미국에서는, 왜 이렇게 부자와 빈자의 소득격차가 크게 된 것일까? 그것은 [미국인들의 인식]에 있다. 그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개인의 활동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의욕 있고 재능 있는 사람은 자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욕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성공할 수 없지만,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미국은 언제나 [기회 균등]의 나라였지, [결과 균등]의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책임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 개념은 [개척 정신의 핵심]으로 미국의 국가적 의식에 확고히 뿌리박고 있다.

 

* 미국인의 3분의 2는 [성공이 자신의 통제력 밖에 있지 않다]고 믿었다.

* 유럽 국가의 대다수 국민들은 [개인의 통제력 밖에 있는 힘이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고 믿었다.

* 미국인의 64퍼센트는 [개인적인 욕구, 위험 감수의지, 근면, 자발성] 등이 성공요소이다고 믿는다.

* 71퍼센트의 미국인은 [빈자들에게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 반면 유럽인들은 40퍼센트만이 그렇게 생각했다.

* 선진국 가운데 인구대비 빈곤층의 비율이 가장 높은 미국에서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가난이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 때문에 찾아온다고 믿는 경향이 유럽에서 강한 이유는 최근까지 유럽의 빈자들이 인종적으로 소수가 아니라 백인들이었고,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동포에게 닥친 불운이 내게도 닥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들의 곤경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반면 미국의 빈자들은 대부분 노예출신의 흑인들이고, 그들은 아직도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며, 빈곤층에 속한 사람들이 우려할 정도로 많다는 사실도 그들이 인종적으로, 심지어 생물학적으로 우리와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그들의 곤경을 계속 외면하면서, 미국이 기회로 가득 찬 나라라는 잘못된 믿음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정부의 개입에 의한 [부의 재분배]는 [아메리칸 드림]의 기본 정신을 해치며, 미국적인 성공담의 핵심에 있는 [개척정신]을 조롱하는 꼴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미국인들은 사회가 생간하는 부를 분배하는 가장 공평한 수단은 [시장]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유럽은 사회를 계급구조로 파악하는 데 더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시장]을 자율적으로 내버려두면 [불공정함이 발생]하기 때문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믿는다. 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에 있어, [미국과 유럽의 접근 방식]이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미국은 자신들이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경제가 활기를 띠며,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높고, 실업률도 낮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유럽이 미국 경제를 모델로 삼아야지, 미국이 유럽 경제를 모델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믿는다. 과연 그럴까??

유럽의 전체 생산성은 미국 수준의 92-97퍼센트에 해당하지만, 개인당 소득은 미국의 72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차이의 75퍼센트는 근로시간이 미국보다 적다는데 있다. 프랑스가 주 35시간 근무제를 택한 이유는 부분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대신 정부는 기업체들의 사회보장 분담금을 줄여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그들은 생기 있고 의욕 있는 근로자가 하루 7시간 생산하는 양이, 지치고 의욕 없는 근로자가 하루 8시간 동안 생산하는 양과 맞먹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 근로자들은 더 많은 여가 시간을 가지면서 소비자 지출도 늘고 있다. 직장을 가진 프랑스의 어머니들은 학교가 쉬는 수요일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자녀를 돌볼 수 있다. 2000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근로자들은 연간 약 1,562시간을 일했고, 대조적으로 미국의 근로자들은 1,877시간을 일했다. 유럽의 근로자들은 직장과 가정생활을 둘 다 무리 없이 잘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고용주들은 직원들에게 휴직제나 타임 크레딧을 제공한다는 생각 자체에 회의를 가지며, 그런 느슨한 근무제로 벨기에 기업체들이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아해한다. 그러나 벨기에 근로자들의 시간당 생산성은 미국보다 높다.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이 일하기 위해 사는 반면,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미국인들은 여가보다 일을 선호하기 때문에 임금을 많이 받아 GDP를 높인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일보다 여가를 선택하기 때문에 줄어든 임금과 지출이 GDP를 낮춘다. 주요 경제적 지표인 GDP는 이런 삶의 질과 관련된 요인을 전혀 감안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이 개인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보장해 주느냐는 문제에 있어서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처음부터 무료 교육의 기회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회적 지원이 거의 없이 시장에서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했다. 반면 [유럽인]들은 치열한 적자생존의 시장에서 균형을 잡는 책임이 사회에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뒤처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불운한 사람들을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둘 다 장, 단점이 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반면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이 냉혹하며 어려운 동포들에 대한 적절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희한하게도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의 충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의 지적을 무시한다. 유럽은 이제 개인과 사회의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쪽으로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사회의 집단적 복지에 대한 책임에 신경을 좀더 쓰려한다는 증거는 없다. 미국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종교적 열정]뿐인데, 그들이 이 [선민의식과 종교적 열정]은 식어가고 있다.

 

[계속]

 

3. 소리 없는 경제 기적

 

미국인들은 유럽에서 휴가 보내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유럽 곳곳에서 자신들의 과거를 느낀다. 여전히 미국인 다수는 유럽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은 ‘구세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각각의 치즈마다 독특한 역사를 가진 프랑스의 치즈골목,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의 주변 골목에서, 런던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그들이 보는 모든 상품은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할 선물이라 생각한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유럽은 느긋하게 쉬고, 감각을 일깨우고, 원기를 회복하고,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곳이다. 그러나 소득과 지출, 투자와 수익, 생계수단 등의 ‘현실세계’와 관련된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인들은 유럽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신흥국가에 주목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경제 혁명이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유럽연합(EU)'의 탄생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아직도 옛 유럽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정 유럽에서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EU는 최대 단일 시장이며 상품 무역뿐만 아니라, 용역 무역에서도 세계1위이다. EU의 인구는 4억 5000만명이며, 세계 전체의 약 7퍼센트를 차지한다. 2003년 EU의 국내총생산(GDP)은 10조 5509억 달러로 미국의 10조 4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EU는 아직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EU는 운송, 에너지, 통신 부문에서 유럽 전체를 단일 첨단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트랜스 유러피언 네트워크(TEN)’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범 유럽 교육 프로그램도 구상되고 있다. EU는 ‘소크라테스, 레오나드로 다 빈치, 청소년’이라는 세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유럽 통합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서-북유럽 근로자들과 새로 가입한 중-남-동유럽 근로자들 사이의 소득과 직업 기술의 큰 격차를 조절하는 일이다.

 

* 서유럽의 회사들이 값싼 임금의 동유럽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 서유럽인들은 동유럽의 가난한 이민들이 이미 과세 부담이 큰 복지 시스템에 추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 동유럽인들은 질 좋은 서유럽 제품의 유입으로 자국 제조업 위기를 우려한다.

 

물론 이러한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EU의 형성은 장애물보다는 긍정적인 성과가 훨씬 많다. 영어가 점차 유럽의 공통어로 자리 잡고 단일시장을 형성해가고 있다. 향후 25년 정도면 현재의 미국과 같은 수준의 내부 시장 통합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중아은행, 중국,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이 달러보다 유로화를 선호하고 있다. 5년 전만해도 유로가 달러보다 강해지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대서양 건너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적인 변화에 주목하는 미국인이 거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 인식의 차이]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유럽을 생각할 때는 문화나 역사적인 배경을 떠올린다. 그들은 무역과 정치를 유럽의 개별국가와 연관 짓는 옛 사고방식을 고집한다. 이제 미국인들은 미국의 50개 주를 아메리카 합중국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 각국을 보는 사고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이제 독일과 미국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캘리포니아 주와 비교해야 한다. 유럽 회원국 중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GDP는 1조 8660억 달러로, 미국의 최대인 캘리포니아 주의 1조 3440억 달러보다 많다. EU 2위인 영국의 GDP는 1조 4000억 달러로, 미국의 2위인 뉴욕 주의 GDP 7990억 달러보다 훨씬 높다. 미국에서 3위인 텍사스 주의 GDP는 겨우 7420역 달러이나 EU 3위의 프랑스의 GDP는 1조 3000억 달러에 이른다. 2003년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의 140개 대기업 가운데 61개가 유럽회사이고, 50개가 미국회사, 29개가 아시아에 본사를 둔 회사였다. 이제 세계의 주요 산업 여러 부문에서 비즈니스와 무역을 지배하는 회사는 유럽의 다국적기업들이다.

 

** 유럽의 길거리에서는 노숙자나 정신장애자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유럽에서도 노숙자나 정신장애자가 존재하며 그 수가 불어나고 있지만 뉴욕, 워싱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대도시의 거리에 비하면 거의 없는 편이다. 유럽에서 사람들은 밤에 거리를 산책한다. 때로는 빈민가에서도 있다. 여성들이 해가 진 뒤에도 공원에서 산책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경찰들도 있지만 미국 도시의 거리에서처럼 그렇게 많아 보이지도 않고 위압적이지도 않다. 유럽에서는 뚱뚱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도 않는다. 때로는 종일 다녀도 비만인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거의 모두가 과체중인 듯하다. 더 놀라운 것은 미국인들이 자신의 외모가 어떤지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유럽에서는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 것 같다. 요즘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거니는 것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다. 유럽에서 일반 가정집을 방문하면 가구나 첨단가구, 첨단 기기가 미국의 일반 가정에 있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유럽의 제품들이 품질이 우수하며 보수도 잘되고 있다. 유럽의 대다수 중년 층 이상은 미국의 친구들처럼 많은 옷을 갖고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유럽과 미국에서 경험하는 ‘삶의 질’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태어난 곳 및 상황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삶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아이디어를 기초로 발전 했다. 따라서 미국은 엄청난 재정을 공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학습 효과 면에서는 유럽의 선진 8개국에 훨씬 뒤지고 있다. /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개인 건강보험에 들지 못하며 공공지원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은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선진국 가운데서 모든 국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는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뿐이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개인당 의료비 지출이 높다. 이유는 영리 의료보험 회사의 마진이다.

미국인들은 모든 사람이 ‘삶, 자유, 행복 추구 등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인 성장이 삶의 질을 보장해 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메리칸 드림이 개인의 기회를 중시한다면, 유러피언 드림은 사회의 집단적 복지에 초점을 맞춘다. 현재 개인의 기회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유럽은 빠른 속도로 미국과의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그러나 삶의 질에 관한 문제에서는 단연코 유럽이 미국보다 앞서 있다.

 

[계속]

 

4. 공간, 시간 그리고 모더니티

 

제러미는 미국인과 유럽인의 차이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화성에서 온 미국인, 금성에서 온 유럽인] 그만큼 미국인과 유럽인의 [사고의 차이]가 심하다는 설명이다.

미국인들은 [안전]을 [자율, autonomy]과 [이동성, mobility]로 파악해 왔다. 인적 교류가 드물고 자연환경이 위협적인 신개척지에서는 [자율과 이동성]을 가져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자율, 이동성, 자유] 이 세 가지가 늘 함께 붙어 다닌다. 미국의 [카우보이]가 좋은 예이다. 카우보이는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사로잡은 자유정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유럽은 사정이 달랐다. 그들에게도 일종의 개척정신이 존재했지만,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 건설로 경험하는 [대리 경험]이었다. 유럽인들은 봉토를 얻거나 성안에서 동업자 조합에 들거나 지역사회에 확고히 소속되어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럽인들은 끝없는 황무지를 혼자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에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드러난다.

 

* 미국인들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한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포괄적 공간을 추구한다.

* 미국인들에게는 시간이 미래 지향적이며, 새 기회를 탐구하는 도구로 간주된다. 반면 유럽인들에게 시간은 과거 및 현재 지향적이며 서로간의 관계를 재확인하고 돈독히 하는 데 사용된다.

* 유럽인들은 휴대폰을 사용할 때, 마치 상대가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 결과 식당에서 혼자 점심식사를 하며 휴대폰으로 수다 떠는 것이 충분히 용인된다. 반면 미국인은 휴대폰을 주로 업무에 더 많이 사용하며, 공공장소에서 휴대폰으로 떠드는 것은 남에게 방해가 되는 행위로,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 유럽인들은 빈민구제를 위해 사회민주주의와 공동 참여를 선호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자립의 미덕을 강조하며, 시장 자본주의적 접근법을 좋아한다.

* 유럽인들은 아직도 [카를 마르크스의,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받는다]는 말에 공감한다. 반면 미국인들은 [애덤 스미스의 시장경제 논리]를 신봉한다.

 

제러미의 주장에 의하면, 세계화 시대의 공간과 시간적 현실을 대처하는 데 있어서, 옛 아메리칸 드림보다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유러피언 드림이 훨씬 적합하다 한다.

자연의 개척과 이용 면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다. 중세 유럽의 성당들은 의도적으로 공동체의 한가운데 위치했다.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형성해 그 속에서 안락을 찾았으며 성당이 그 정신적 기둥이었다. 미국인들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을 좋아한다. 미국인들은 자율성을 상기하며, 언덕 꼭대기나 이웃과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려한다.

 

* 유럽인들의 안전은 [수직방향]으로 인식되었다. 그들은 영구한 구원을 얻기 위해 하늘을 쳐다보았고, 전통과 공동체 관계 속에서 안전을 찾기 위해 자신들 아래 있는 조상 전래의 땅을 내려다보았다. 유럽의 성당에서는 [원근법]을 찾아보기 힘들다.

* 막스 베버의 [세상에 대한 각성], 프랜시스 베이컨의 [신 오르가논, 신 아틀란티스], 르네 데카르트, 존 로크, 아이작 뉴턴 등은 ‘구세계’의 이런 [수직적 인식, 신성화]등을 인간중심의 [수평적 사고]로 변화시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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