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
얼마나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혀있었을까 ??
또 얼마나 여러 번 들었다가 다시 놓고 !!
책의 서문을 읽는 동안 정말 정독을 해야겠다는 욕심에 !!
다시 내용을 음미하며 ....
1. 아메리칸 드림의 퇴색!!
그는 우선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혹은 아메리칸 정신(American Spirit)을 규명한다. 그러면서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그의 책 제목이 유러피언 드림임으로, 그의 방점은 물론 후자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선은, 이제 퇴색해가는 [미국의 정신]을 명확히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어보자!!
미국인 모두는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고, 아무도 소외되지 않으며, 문화의 차이가 장려되고, 모두가 양질의 삶을 누리면서도, 환경을 보존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 평화와 조화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은 미국의 정신(American Spirit)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단다. 곧 미국이 [특별한 소명 의식을 가진 특별한 나라라는 확신]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성공하기 위해서 개인에게 주어지는 무한한 기회를 강조한다. [미국에서는 말이야, 어떤 것이든 네가 택하면 할 수 있고, 네가 원하는 어떤 사람도 될 수 있어! 그걸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 [출세란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 미국의 개척정신과 현실주의, 실용주의를 표현하는 말이다.
미국적 정신에 의하면, 자율적인 사람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영역 밖의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율적이기 위해서는 재산을 가져야 한다. 부를 많이 축적할수록 더욱 독립적이 될 수 있다. 개인의 경제성장, 개인의 부, 독립을 중시한다.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 끊임없는 발전만이 유일하게 의미 있는 삶의 지침이고, 진보가 떠오르는 태양처럼 당연시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나 유러피언 드림은 [자유(freedom)와 안전(security)]을 구성하는 요소에 관해 그들과는 다른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유럽인들은 자유라는 것은, 자율보다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음(embeddedness)]으로 보장받는다고 생각한다. 자유롭다는 것을 타인과의 수많은 상호의존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공동체에 소속될수록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선택권이 넓어진다. 상호관계에서 포괄성이 생겨나고, 포괄성으로 안전이 보장된다고 믿는다.
이런 미국인들의 사고, 그것의 뿌리는 무엇일까?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에 도착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을 [새로운 이스라엘]로 간주했다. 당시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존 윈스롭]은 그들이 하선하기 전, 이렇게 말했다 한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건설하는 곳이 성서에서 말하는 ‘언덕 위의 도시’라고 생각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눈이 우리에게 쏠려 있다. 주님을 올바로 섬기지 못하면, 하나님의 많은 훌륭한 종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만들 것이며, 어디를 가든지 이 좋은 땅에서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그들의 기도가 우리에게 저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더 낫게 개척함으로써 주님을 올바로 섬기면 하나님이 그들을 굽어 살피고 상을 내릴 것이다.] 신앙과 인내심을 통해 황무지를 개척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새로운 에덴동산을 건설하는, 자신들을 하나님의 사자로 여겼다. 이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개념은 미국 역사를 통해 계속 이어지며 [아메리칸 드림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고 한다.
많은 미국인들은 아직도 자신들을 선택받은 사람들로 보고 있으며, 미국을 약속의 땅으로 간주한다. 또 그들은 미국이 위대한 나라가 될 운명을 지니고 있고, 미국이 가는 길이 하나님의 길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주님을 섬긴 보답으로 하나님께서 지구상에서 가장 풍요롭고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 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인해, 이 [아메리칸 드림]은 보편적 사고보다는, 미국에 국한 된 [배타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편에 있는 한 누구든지 ‘산을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이, 미국인들의 자신감(유럽인들은 오만이라 생각)의 원동력이다. 미국인들은 공식적으로는 [정교분리(政敎分離)]를 보장하지만, 대다수의 미국인의 사생활은 종교의 지배를 받는다.
* 미국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다. 48퍼센트
* 미국 사회의 힘이 국민들의 신앙심에 입각한 것이다. 58퍼센트
* 미국인들은 매일 신앙을 실천한다.
자녀의 학교가 매일 아침 기도로 수업을 시작하는데 찬성한다. 71퍼센트
*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는다.
악마의 존재를 믿는다. 68퍼센트
* 예수와 적그리스도 간의 아마겟돈 전투로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다. 40퍼센트
* 자기 생애에 예수의 재림이 있을 것이다. 45퍼센트
* 미국인은 천국의 존재를 믿으며, 82퍼센트, 자신이 천국에 갈 확률이 높다. 63퍼센트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선과 악에 대한 절대적인 구분이 있으며,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는 견해를 선호하는 반면, 유럽인 심지어 캐나다, 일본인들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잣대는 있을 수 없으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는 전적으로 시대 상황에 달려있다.]는 견해를 택한다. 이런 미국은 전쟁의 명문을 국민에게 설득할 때는 늘 이런 논리를 적용해왔다. [악의 제국, 불량 국가들, 성전, 악의 축 등]
많은 유럽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세계인들 모두가 미국적 생활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미국인들이 믿는다는 점이다. 미국인의 79퍼센트는 [미국의 사상과 풍습이 전 세계에 전파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신앙에서 위안을 찾고, 자신들이 선택받은 사람들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보살핌을 받고 보호받는다고 믿는 한, 그들의 국수주의와 애국심이 쇠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면 유럽에서 국가적 긍지가 쇠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조국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라기보다 더 넓고 깊이 있는 상호의존성을 포용하기 위해 국가 경계선을 초월한 정체성과 소속의식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화, 인터넷과 네트워크로 서로가 연결되는 상호의존의 ‘경계없는 세계’에 미국인들의 ‘선민의식(배타성)’은 유럽인들의 ‘포괄성’으로 교체될 수 있을까? 유럽인들은 이런 생각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여기겠지만, 미국인들은 실제로 자신들이 선민으로서 특별한 자위를 부여받았다고 굳게 믿는다. 미국인들이 그런 신념을 포기한다거나 그 진실성에 회의라도 갖는다면 그들의 자신감과 아메리칸 드림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정신]을 설명하면, 우선 [존 윈스롭]이 [아메리칸 드림]의 정신적 지주였다면, 거기에 실용적인 지침을 제공한 사람은 [벤자민 프랭클린]이라고 말한다. 프랭클린은 미국의 거대한 원시적 자연에서 [개척에 의해 생산될 미개발 자원]을 보았다.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프랭클린의 비전은, 끊임없이 부를 창출하고, 시장을 확장할 수 있는 독창적 천재들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원스롭이 [구원]을 제공했다면, 프랭클린은 [개인의 발전]을 제공했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신앙심이 깊은 동시에, 가장 실용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이 두 전통은 서로 상반되기는 하지만, 역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인류의 비전에 불을 댕겼다. [종교적 열정]과 [현실적 실용주의]의 결합은 미국의 황무지 개척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고, 고도로 발달된 산업사회, 도시사회 건설의 밑거름이 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인간의 기본적인 두 가지의 욕구, 즉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구원]을 추구했기 때문에,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인들의 신앙은 여전히 강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의 두 번째 요소는 약화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뉴스위크]의 설문조사 결과, 미국의 젊은이의 55퍼센트가 장차 부자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그들 중 71퍼센트는 현재의 직장으로는 부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응답했다. 또한 미국 젊은이들 중 76퍼센트는 출세하기 위해 과거처럼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라 답했다 한다. 이제 미국에서 출세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꼽았던 (프랭클린의)[근면과 인내]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그냥 운이 좋아 부자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열심히 일하지 않고도 요행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제의 [아메리칸 드림]은 기독교 종말론과 계몽 운동의 실용주의 및 합리적 행동을 아우른 고매한 이상에서 격하되어, 한낱 [요행을 바라는 형편없는 꿈]으로 전락한 것이 현실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요즘의 미국 중산층 젊은이들을 예로 들어, [아메리칸 드림(미국)의 현실]을 설명한다.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신앙, 자제, 근면, 자립, 희생이라는 개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의 감정, 정신 상태를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는 [권태 ennui)]라는 것이다. 그들은 성공을 이룬 부모 덕택에, 그들이 꿈꿀 기회를 갖기도 전에 그 꿈을 이뤘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허용해 그들의 자만심을 부풀려 놓았고, 그에 따라 젊은이들은 [자신은 성공할 권리]가 있다고 믿게 되었단다. [요즘 학생들은 강의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A학점을 얻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아메리칸 드림]은 노력으로 쟁취하는 꿈이 아니라, 하나의 권리로 간주되었다. 또한 그들의 과도한 자신감과 권리의식은 정서적 혼란을 가져왔고, 이런 자아 도취형 인간은 좌절을 감당하지 못해, 반사회적 행동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표출한다는 것이다. 요즘 미국인 네 명 가운데 한명 꼴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폭력을 가용할 수 있다고 믿는 통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단다.
미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지독한 개인주의자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공동체를 위해 어느 국민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처음부터 미국인들은 개인의 부 축척을 극대화하고, 재산 운용에 대한 개인의 자율권을 보장받기 위해 세금을 적게 내고, 지역사회에 대한 중앙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그에 따라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개인의 선택 문제로 여겨졌다.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대학과 병원의 절반, 사회 서비스 단체의 3분의 2가 공공기관이 아니라 비영리 사회단체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비영리 보건, 교육, 사회 서비스 단체 가운데 다수는 [종교단체의 연장]으로 세워졌다. 미국의 비영리 부분의 본질은 [종교 공동체]이다. 따라서 문제는 미국의 비영리 부문 자원봉사가 빈민구제에 있어서, 유럽처럼 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 이룰 수 있는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공공의식의 유발은 [개인주의와 종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반면 유럽 국가의 경우, 시민사회는 훨씬 세속적인 목표를 추구하며 [개인의 자선]이라는 기독교 개념보다는 [공동체의 복지]에 대한 [집단 책임]이라는 사회주의적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미국의 비영리 부문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는 꾸준히 줄어들거나 급감하는 추세이다. [시간과 돈 ; 맞벌이 가정] 때문에, 도시의 비대화로 인한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면서, [비영리 단체의 활동에 참여할 시간이 줄었다.] 또 여가 시간, 오락의 개인화와 세대교체 때문에, 과거와는 달리 요즘의 젊은 미국인들은 [비금전적인 사회 목표를 추구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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