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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피추(Machupichu)

남미

by 초보어부 2005. 7. 2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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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스꼬에 온 가장 큰 이유 !

아니 페루에 온 가장 큰 이유 - 마추피추 !


정말 아름다움과 눌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해와 달, 별을 보며, 그것들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을 극복하며 살았던 잉카 !!

남들을 해치고, 남들을 공격하기보다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이 높은 산꼭대기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그들 ....


하늘의 화냄을 달래기 위해 동물제사를 드렸고 ....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천재지변에는 '인신제사'를 드렸다는 그들 ....

그러나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을 통해 자연의 이치와 정확한 방향들을 찾았다는 ...


'마추피추' 앞에 우뚝 솟아있는 '와이나피추'와 더불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을 ........


 

새벽부터 전쟁을 치렀습니다. 큰짐은 숙소에 맡기고, 6시 20분 ‘마추피추‘행 기차역으로,

이번 Tour의 잔금을 치르지 않았다고 기차역에서 잔금을 요구합니다.

가진 돈은 없고, 돌아와 주겠다해도 막무가내입니다.

결국 기차를 놓치고, 역구내 ATM에서 돈을 뽑아 잔금을 지불했습니다.

놓진 기차를 타기 위해 우리를 태운 택시는 다음 역인 POPORY 역으로, 약 25분 걸립니다.

기차로 Cusco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스위치 백을 해서 산을 올라와야 합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요. 이 역까지 약 1시간, 우리는 미리 도착해서 기차를 기다립니다.

아침 기차를  놓친 우리와 같은 몇 여행객들이 차례로 들어옵니다.


다시 기차를 타고 ‘마추피추‘로 .....

Cusco에서 아침 6시, 6시 35분, 7시 10분 .... 3번의 기차가 있습니다.

 

기차내의 ‘홍익회(?) 판매원‘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크로와상과 차, 커피로 아침을 대신하고, 10시 30분 Aguas Calientes에 도착했습니다.

 

Aguas Calientes에서 ‘마추피추‘까지는 버스로 산을 오릅니다.

사람이 차면 버스는 수시로 출발합니다.

지그재그 산길을 올라, 입장료를 지불하고 드디어 ‘마추피추‘ Tour에 들어갑니다.

참 아름다운과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해와 달과 별을 보며, 그것들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을 극복하며 살았던 잉카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남을 해치고, 남을 공격하기보다는,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이 높은 산꼭대기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그들 .....

 

해와 달의 움직임, 별의 움직임을 통해 정확한 방향을 찾은 것은 후대의 놀라움이지만,

이 움직임을 통해 그들은 계절과 기상의 변화를 이해했고,

그들의 삶을 준비하는 지혜를 가졌을 것입니다.


 

 

‘아구아 깔리엔따스‘는 정말 작은 도시, 기차역과 100여 가구(?)가 전부입니다.

이곳에 온천이 있다해서 겸사겸사 쉬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기차역 상점과 도시를 구경하고, 근사한 저녁을 먹었습니다.

‘Inka Wasi', 식사비는 좀 비쌌지만, 분위기도 좋고 음식 맛도 좋습니다.

피자를 직접 불에 구워주는데 맛보다는 정성이 더 좋습니다.

숙소는 깨끗한데 역시 더운물이 나오질 않습니다. 대충 씻고 내일 온천을 기대합니다.

 

 












 



1532년 잉카를 침범한 스페인의 Francisco Pizzarro는 형제간 싸움으로 지친

잉카 왕 Atahualpa를 카하마르카로 초청한 후

비무장 병사 2000명을 거느리고 나타난 왕의 측근을 순식간에 총과 기병으로 살육하고

아타왈파를 사로잡았다고 하지요.

불과 180명의 스페인 병사와 스물 일곱마리의 말에 의해서

400여년에 걸친 잉카의 역사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뒤지면 이 장면을 기술한 피사로 비서의 목격담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방 가득히 금과 은을 채워 주기로 하고 풀려 난 왕은 약속대로 금을 바치고

기독교로 개종까지 하였으나 피사로는 1533년 7월 16일 아타왈파를 교수형에 처하고 말았다지요.

비참한 역사입니다.


그 해 11월 쿠스코를 점령한 스페인 군대는 건물마다 가득 차 있는

황금을 약탈, 부피를 줄이느라 녹여서 본국으로 가져갔나 ??

원형으로 보존된 잉카의 황금을 거의 볼 수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  스페인의 죄일까??

정복자는 제국과 함께 그들의 전통과 문화도 말살하고 ......


그 후 1536년 Manco Inca가 반란을 일으켜 저항을 시도해 보았으나

피사로 군은 칠레 원정에서 돌아온 300 기마군의 지원을 받아 이를 평정하였고

1539년 잉카는 완전히 멸망하고 .....

많은 군대를 가지고 어떻게 얼마 안 되는 스페인 군을 당해 내지 못하였을까? 

총과 기병 등 무기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태양신이 보는 데서 싸워야만 한다고 믿었던 태양의 나라 잉카의 군대는

낮에만 전투를 하였고 전쟁보다 농사가 더 소중했던 군인들은

비가 오면 집으로 돌아가 모내기를 하였다 한다.

어수룩할 정도로 순박한 백성들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500년을 지나지 않은 멀지 않은 옛날의 슬픈 역사 이야기다.

 

아직도 그들 잉카의 후예들은 저 산넘어 어디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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