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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Bucuresti) - 부카레스트(Bucarest) 입성!!

불가리아, 루마니아

by 초보어부 2016. 8. 1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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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 ㅋㅋ 그럼에도 집 떠나면 개고생인데 ~~~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정말 개고생의 진수를 맛보았습니다.

목적지를 찾아 한참을 달리면, 어느 새 도시의 반대쪽 끝까지!!

다시 길을 묻고, 찾는다고 다시 달리면 도시의 다른 반대쪽 끝!!

무슨 글씨가 그림 같아서리 ~~ 그마저도 찾기도 어렵고!! ㅋㅋㅋㅋ

이러 길 서너 차례!! ㅠ ㅠ ㅠ ~~~~

드디어 뚜껑이 열리자, 길가 한편에 차를 세우고 ..... 잠시 심호흡!!!

이렇게 멀리, 낯선 나라에까지 와서리 ~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까지는 없지 않은가??

머 ~~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러면서 도시 구경을 다 하는 것이니께!!! ㅋㅋㅋ

지도 함 다시 보고, 돌아다녔던 길을 기억하며 ..... 이제 부쿠레슈티의 올드타운 탐방!!





ㅋㅋ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는 마눌!! 지도 보느라 ..... 낑낑 인상!!! ㅋㅋㅋㅋ



본래 오늘의 계획은,

벨리코 터르노보를 출발하여, 오전에 루세 돌아보고, 오후에 부쿠레슈티 인민궁전을 보려했는데 .....

시내에서 넘 시간을 많이 허비해버려, 벌써 인민궁전의 투어(마지막 투어 - 15:30)는 끝났겠고 ......

올드타운이나 나가보자!! ..... 근처의 골목길에 차 주차하고 ......

올드타운을 찾아서 ......






[ 아마도 병원이었을 것이다.]






[ 시내 중심에 있는 오래 된 정교회!! ]


부쿠레슈티대학!! - 한국인 유학생들도 제법 있다는데 ......




은행 건물이 아주 고풍스럽습니다.

문득 드는 생각! - 반칸반도를 돌아보는 패키지 여행은 ....

이 부쿠레슈티에서 무엇을 볼까??




더운 날씨에 지쳤지만 ...... 도심을 돌아봅니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대도시를 싫어할까??





어라 ~~ 모르는 아가씨가 찍혔넴!! ㅋㅋ 미안해요! 당신을 찍으려 했던 것은 아닌디 ~~~

살다보믄 그런 일도 있지요!! ㅋㅋ





참 아름답고 예쁜, 러시아 정교회!! 아쉽게도 공사 중이다.



올드타운을 돌아보고, 다시 인민궁전 앞에 왔는데 ....

저녁 8시가 되었는데도 날이 환하다.


조금 불량했던 점심식사 때문에, 속도 불편하고 .... 밥 생각도 없고 .....

걍 인민궁전 분수대 옆 벤치에서, 마눌과 맥주 한잔!!

아이스크림은 실패!! ㅋㅋㅋㅋ


고단했던 하루를 나누며, 낼은 더 멋진 여행이 되기를 기원하며!!!









 

루마니아 최초의 공국인 왈라키아('블라키아인의 영토'라는 뜻)14세기초에 등장했으며, 2의 공국인 몰다비아는 1349년 카르파티아 산맥 동쪽에 있는 프루트 강 유역에 세워졌다. 그러나 왈라키아와 몰다비아는 각각 14세기와 1455년에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 되었다. 왈라키아와 몰다비아가 19세기까지 투르크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던 것에 반해 루마니아의 다른 민족들은 트란실바니아의 산악지역에 거주하며 헝가리인들의 통치를 받았다.

 

1812년 러시아는 베사라비아(몰다비아 남동쪽)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했다. 19세기 중반 루마니아의 민족주의 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왈라키아·몰다비아·트란실바니아에서 일어난 반란은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에 의해 진압되었다. 크림전쟁(1853~56) 후 왈라키아와 몰다비아는 공국의 주권을 되찾았고, 1861년 두 공국이 통합하여 1명의 대공을 선출함으로써 부쿠레슈티를 수도로 하는 사실상의 루마니아를 건국했다. 루마니아는 러시아-투르크 전쟁이 끝난 뒤 베를린 조약(1878)을 통해 국제적인 승인을 받았다.

 

루마니아는 연합국에 가담하여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지만, 동맹국이 곧 부쿠레슈티와 루마니아의 여러 지역을 점령했다.

 

그러나 1918년 동맹국의 패전으로 트란실바니아·부코비나·베사라비아는 다시 루마니아에 양도되었다. 19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일고 있는 것과 유사한 파시즘 운동이 루마니아에도 나타나자 루마니아는 독립을 지키기 위해 독일과 동맹을 맺었다. 194150만명의 독일병력이 루마니아 영토에 주둔했으며, 소련을 침공하기 위한 독일-루마니아 연합군대가 창설되었다. 그러나 1944년 소련이 루마니아를 침략해 소련의 점령하에서 루마니아의 정치·경제는 동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소련의 통제를 받았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이 점차 세력을 잃었으며 루마니아 공산주의자들은 1947년말 루마니아의 왕을 강제 퇴위시키고 루마니아 노동당을 결성했다. 이 당은 19483월 선거에서 전국가회의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장악하여 소련을 모방한 헌법을 채택하고 루마니아 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했다. 1948년 이후 루마니아는 소련의 다른 위성국가들과 동맹을 맺었지만 1960년대에 들어와 니콜라이 체아우셰스쿠의 집권하에 소련의 노선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루마니아 노동당은 1965년 루마니아 공산당(Communist Party of Romania/CPR)으로 개칭되었다. 1970년대에도 루마니아는 외교정책에 관련된 문제에서 더욱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했다. 국내적으로 체아우셰스쿠는 중공업의 급속한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중앙집권화된 계획경제체제를 펴나갔다. 그러나 그의 원대한 개발계획은 실패했으며, 그결과 축적된 외채를 상환하기 위해 1980년대에 철저한 긴축재정을 실시해야 했다.

 

또한 국민의 생활수준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식품과 연료의 상당량을 수출하면서 급격히 하락했다.

 

1989년 동유럽 전역에서는 공산당이 일당독재에 의한 집권을 포기했지만 체아우셰스쿠는 시대의 조류에 역행하면서 국민들이 반대하는 자신의 정책을 강력히 고수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중순 반정부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루마니아 군대가 이 봉기에 합세하여 그에게 대항하자 그는 도망했으나 새로운 임시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당했다.

 

공산주의자와 비공산주의자들의 연합세력으로 구성된 임시정부는 복수정당제를 바탕으로 한 자유총선거를 준비했다. CPR는 해산되었으며 루마니아내에서의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 () 체아우셰스쿠 정부의 지도세력들이 주도하는 국민해방전선은 19905월에 실시된 총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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